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빈 윤씨 (문단 편집) === 후궁 생활 === [[1780년]](정조 4년) [[3월 10일]], 16세의 화빈 윤씨가 입궁해 후궁으로 책봉되었을 때 정조의 나이는 29세였다. 1780년(정조 4년) [[3월 12일]], [[창경궁 자경전|자경전]]에서 화빈의 가례를 행했다. 1780년(정조 4년) 3월 12일에 예조가 화빈의 관례 길일을 택했는데, [[3월 15일]] 오시(午時, 낮 11시30분 ~ 12시 30분)였다. >今番新揀擇 卽寧陵令尹昌胤女子也 再昨年洪嬪 則依大明集禮皇貴妃禮典 今則只依本朝內命婦之一品嬪例擧行 >이번 새 간택에 영릉의 령으로 있는 윤창윤의 딸이 나갔다. 재작년에는 원빈 홍씨의 의대를 명나라의 예에 따라 황귀비의 예를 따랐다. 다만 이번에는 조선의 예법을 따라 내명부 정1품 빈의 예법으로 거행했다. >- 황윤석, 《이재난고》 >和嬪尹氏 僭妬於中宮 喑詛於成嬪 因此得罪 自內嚴囚 方有降宮爲房之議 >화빈 윤씨는 중궁(효의왕후)을 분수에 지나치게 질투했고 성빈(의빈 성씨)을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저주했다. 이로 인하여 죄를 얻었고 대궐 안에 엄히 가뒀다. 의논하여 대궐에 방을 내렸다. >- 황윤석, 《이재난고》 [[http://yoksa.aks.ac.kr/jsp/aa/VolView.jsp?aa10no=kh2_je_a_vsu_55001_039&aa15no=039&aa20no=55001_039_0148|#]] >成嬪 子懸之證 暴發而逝 盖和嬪尹氏所密毒也 故尹亟罪黜 >의빈은 자현(임신 때에 태기가 조화되지 못하고 위로 치밀어 가슴이 부어오르는 것처럼 아픈 병증) 병세가 있었고 사망했다. 대개 화빈 윤씨가 독을 썼다고 했다. 윤씨에게 심히 죄를 물어 내쫓았다. >- 황윤석, 《이재난고》 [[http://yoksa.aks.ac.kr/jsp/aa/VolView.jsp?aa10no=kh2_je_a_vsu_55001_039&aa15no=039&aa20no=55001_039_0128|#]] [[의빈 성씨]]는 약 6년 동안 사서에 따라 최소 3번([[조선왕조실록]]), 최대 5번([[이재난고]])이나 [[임신]]하고, 의빈 성씨 사후에 간택된 [[후궁]] [[수빈 박씨]]는 14년 동안 [[순조]]와 [[숙선옹주]]를 낳았다. [[수빈 박씨]]가 입궁했을 때 화빈 윤씨의 나이는 23살로 한창 [[임신]]을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굳이 새 후궁을 간택한 것을 보면 화빈 윤씨는 그간의 행적과 시기 질투로 인해 총애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. 명문가에서 태어나 입궁하여 빈호와 궁호를 받아 가례를 치르고 입궁한 지 약 9개월 만에 [[임신]]까지하면서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지만, 출산 예정달이 지나도록 출산을 못했다. 상상 임신이었기에 [[유산(의학)|유산]]한 기록도 없다. 당시 [[정조(조선)|정조]]는 해산달이나 당일에 되어서야 [[https://m.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108574&cid=40942&categoryId=33383|산실청]]을 세우도록 했기 때문에 겉보기나 진맥 등에서는 진짜 [[임신]]처럼 보였을 것이다. [[효의왕후]]와 [[의빈 성씨]]를 질투해 따로 방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남은 것으로 보아 당시 여성에게는 금기시되는 [[질투|투기]]가 지나치게 심했던 것 같다. 이후 [[문효세자]]가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, [[홍역]]으로 [[사망|요절]]하고, 몇개월 뒤 [[문효세자|세자]]의 친모인 [[의빈 성씨]](宜嬪 成氏)가 만삭의 몸으로 [[사망]]했다. 이때 화빈 윤씨와 고모부 조시위가 저주하고 독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. [[문효세자]] [[사망|요절]]의 배후를 성토하는 과정에서 조시위는 화빈 윤씨의 산실청을 30개월이나 주관하여 세자 책봉을 늦추려 했고, [[문효세자]]와 [[의빈 성씨]]에게 약을 잘못 올리게 했다는 의혹 등으로 [[https://m.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05270&cid=41826&categoryId=41826|위리안치]]되었다. 화빈 윤씨의 이후 활동상은 60세에 [[사망]]할 때까지 찾을 수 없다.[* [[https://books.google.co.kr/books?id=yTJSCgAAQBAJ&pg=PA343&dq=%ED%99%94%EB%B9%88+%EC%9C%A4%EC%94%A8&hl=ko&sa=X&ved=0ahUKEwiQxO2kxODSAhWMJ5QKHXO-Dd8Q6AEIGjAA#v=onepage&q=%ED%99%94%EB%B9%88%20%EC%9C%A4%EC%94%A8&f=false|#]] 《한국 왕실여성 인물사전》 김창겸, 김선주, 권순형, 이순구, 이성임, 임혜련 저.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. 2015년. pp.343] 실록에도 일체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어머니 [[혜경궁 홍씨]]가 쓴 《[[한중록]]》에도 정조의 다른 후궁들인 의빈, 원빈, 수빈만 언급되고 화빈은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